글씨와 인품
[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의 사람됨을 평가할 때 곧잘 인용하는 말인데, 다소 고전적인 느낌이 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현대감각을 아주 벗어난 기준은 아니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의 풍채. 말. 글씨, 그리고 판단력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이나 자질을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인데, 아마 이 중에서 현대감각으로 보아 가장 문제가 된다면 글씨가 아닌가 한다.
글씨 가지고 어찌 그 사람의 인간성이나 품위를 판별할 수 잇느냐. 그건 옛날 선비들이 붓 가지고 생활하다 보니 공연히 만든 기준이거나 망상이다.
요즘은 붓글씨를 쓰는 사람은 제한이 돼있고 주로 볼펜글씨나 쓰는데, 그걸로 어찌 사람을 점친다는 말인가 하고 항변할 사람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선생님은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이 붓글씨이든, 볼펜글씨이든 글씨는 그 사람의 인격과 자질을 크게 대변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글씨만 봐도 그것이 남자글씨인지 여자글씨인지 알 수도 있고, 덕 있는 사람인지 재주 있는 사람인지도 판별이 가능하다. 더구나 붓글씨의 경우엔 그 쓴 사람의 심성과 의지가 대뜸 표출되는 예가 얼마든지 있기에.......
우아한 글씨, 간교한 글씨, 유창한 글씨, 중후한 글씨, 탈속한 글씨, 천박한 글씨, 그밖에도 神筆 仙筆 達筆 拙筆 惡筆 亂筆 등등 그 글씨의 됨됨이에 따라 얼마든지 그 명판을 달리할 수 있으니 볼수록 신비한 것이 글씨의 세계다. 같은 사람의 글씨라도 그가 전성기에 쓴 글씨와 쇠퇴기에 쓴 글씨가 다르고 그의 직업. 학력. 연령. 건강. 경륜 등에 따라 자획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글씨란 인간의 심과 기에 크게 좌우되는 예술이다.
흔히[心情必定]하는 말도 마음이 바르고 마음이 겸허해야 좋은 글씨가 나온다는 뜻이니, 인간평가의 기준으로 글씨를 넣은 것은 선인들의 뛰어난 예지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