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泰山) 같은 부모님 이야기가 있다.
몇 해 전 신문에 일을 저지른 아들에 대한 기사가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미화원 아버지가 어느 날 아들이 비싼 고급 브랜드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너 돈이 어디서 나서 이런 옷을 입었니? 추궁하자 아들이 전철역에서 남의 돈을 훔쳤습니다. 이 말에 눈앞이 캄캄해진 아버지는 아무리 가난하고 어렵다고 남의 돈을 훔쳐서야 되느냐, 이놈아! 하며 울면서 파출소로 데리고 갔다.
자술서 쓰는 것을 보니 이번이 첫 범행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래, 내가 가난하고 어려워서 옷을 못 사준 내 죄다. 오죽이나 그걸 입고 싶었으면 그랬겠느냐마는 어찌 어릴 수가 잇느냐?
가슴을 치다 이 아버지는 끝내 숨을 거두었다.
중죄를 내려달라는 어머니의 호소에도 무죄라는 판사의 선고가 내렸다.
훌륭한 부모님의 아들이 절대로 잘못될 수 없음을 믿고 있기 때문이란다.
자식의 잘못은 오로지 부모인 자신들에게 그 원인이 있다며 자성(自省) 지괴(自愧)하는 부모님의 자식사랑이 가슴에 파고든다.
아이들을 비행에서 구하는 최후의 보루는 가정이다.
아이들에게는 온 세상이 나를 적대시해도 부모만은 내 편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겠다. 즐거운 곳은 우리 집뿐이다.